자기개발

시간의 경제학 - 집중과 생산성

falconer 2007. 3. 9. 07:51
시간의 경제학 - 집중과 생산성
 
  100원짜리의 경제학 - 쇼핑카트
마트에 가면 입구에 길게 늘어서 있는 카트들이 있다. 100원짜리 동전을 넣고 카트 줄에서 카트를 꺼내 쇼핑을 끝낸 후 카트를 원래의 회수장소에 갖다 놓으면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100원짜리 동전이 나온다. 장을 본 사람이 빈 수레로 돌아왔건 몇 십 만원 어치의 물건을 샀건 100원을 돌려받는 게임의 법칙은 동일하다. 100원을 놓고 100원을 받는 하나의 간단한 룰이 있을 뿐이다. 보상의 총액은 100원짜리다.

이렇게 뻔하고 작은 보상의 효과는 대단히 크다. 정리해주는 사람도 없는데 카트는 제자리에 정리된다. 100원짜리를 가지고도 사람들을 카트 보관 장소까지 수십 미터를 기꺼이 이동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 자체로 100원짜리의 힘을 새삼 느끼기도 하지만 보상 자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더 대단하다. 보상에 대한 반응이 더 중요한 것이다. 100원으로 홀려서 거의 예외 없이 카트를 제자리에 갖다 놓는 것이다. 100원이면 쇼핑하다가 불필요한 물건을 구입한 금액의 백분의 일이 안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작은 100원을 이용하지 않고 직원들이 일일이 카트를 정리하게 한다면 정리도 잘 안될 뿐만 아니라 그 수고는 대단할 것이다. 이건 정말 시스템의 힘이다.

100원짜리 쇼핑카트에 관련해 사람들의 심리학에는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있다. 아주 작은 낙차로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분명히 강력한 에너지가 있다. 필자는 이 메커니즘을 무엇이라고 부를 것인가 한참을 고민했고 아직도 생각하고 있다. 100원짜리로도 사람들에게 자발적으로 카트를 모아 놓는 일을 시킬 수 있는 메커니즘에 대한 생각은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이것을 이용하여 무언가 대단한 일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케팅을 전공한 사람들이 100원 카트를 무엇으로 분류할지는 몰라도 그 안에는 많은 것들이 숨어 있음에 틀림없다. 10원으로는 효과를 내기가 힘들 것이고 100원이 아니라 500원으로 하면 너무 비싸다고 투덜대고 이용고객이 떨어질지도 모른다.

이 게임에는 몇 가지 요소가 숨어있다. 우선 카트의 보상효과는 동전교환기가 망가지지 않는 한 즉각적이다. 보상은 단 몇 초도 끌지 않고 바로 일어나며 예외가 없다. 교환의 법칙도 간단하다. 그 장소까지만 가져오면 틀림없이 보상이 일어나게 되어있다. 물론 카트를 끌고 갈 수 없다는 것과 그러느니 카트를 정리해서 100원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은 동시에 일어날 것이다. 정교한 세팅이다. 이런 원칙들은 강력한 피드백 고리를 만든다. 피드백의 루프가 강력하면 시간이나 돈의 경제학은 산수보다는 심리학적인 흐름을 따른다. 생각의 흐름조차 일으키지 않을 만큼 루프는 단순하다.

100원의 상실이나 회수와 관련된 보상에 관한 반응이 이 정도면 액수가 좀 더 큰 보상기전에 사람들이 광분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보상기전은 보상을 주는 측으로서도 무언가 득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공정해야 한다. 카트의 루프는 사실 돈을 넣고 다시 받는 것이기 때문에 이용자들이 피해 의식을 느끼지 않는 것으로만 해도 대단한 성공이다. 만약 좀 더 적극적인 반응을 더 긴 고리에서 바라고 있다면 조금 더 큰 보상을 해주어야 할 것이다.

다른 문제는 사람들이 이 보상기전에 어떻게 빠져들게 하느냐 하는 경로와 설계의 원칙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현실의 생활은 보다 더 복잡한 룰과 애매한 경로를 거치는 보상기전이 있지만 의외로 보상기전에 대해서는 잘 생각해보거나 알려져 있지 않다. 보상이 일어나는 정확한 경로나 이유를 잘 모르는 것이다. 또한 보상을 어떻게 해주어야 하는지 , 보상을 해주는 방법론 같은 것은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누군가 책을 쓴다면 필자는 열심히 읽을 것이다.).

그러나 적절한 보상이 일어나면 사람들에게 강렬한 심리적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은 사실이고 기호 조작이나 지식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보다 중요한 일이 없다. 사무실에 앉아 서류를 만들고 개발을 하고 제안서를 만드는 우리들은 지식 근로자이다. 실제의 물건이 없이 기호만 만지다 보면 100원 동전과 같은 실물이 아니라 상징적인 것들도 다 보상의 일부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독자들도 자신의 분야에서 100원 쇼핑카트와 같은 제로섬 피드백 게임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기호를 다루는 지식노동자의 생산성 - 개의 꼬리를 흔드는 법
보상이 중요한 것은 관심과 집중을 높이기 때문이다. 아주 미약한 보상이 있더라도 일들은 실제보다 조금 더 구체적인 것으로 변한다. 조금 더 구체적인 것으로 변하면 더 집중과 관심이 높아질 수 있고 나중에는 모든 일들이 손에 잡힐 듯하며 더 진행되면 칼끝에라도 한발로 서 있을 수 있을 것 같은 놀라운 집중이 일어나기도 한다.

한때 도올 김용옥의 팬이었던 필자는 집중의 힘에 대해서 두 가지 기억에 남는 구절을 기억한다. 하나는 “나는 불교를 이렇게 본다”라는 책의 끝머리에 나오는 “분홍신”에 대한 내용이다. 혼자서도 춤을 추는 동화속의 분홍신처럼 자신의 기의 흐름이 글로 나오다보면 펜은 혼자서도 글을 쓸 것 같다는 도올의 독백이었다. 물론 20년 전의 책 내용이지만 요즘도 도올 선생은 쓸 것이 너무 많아서 고민이라고 한다. 다른 하나는 강연에 오르기 전에 갑자기 신열이 오르듯이 신기가 오른다고 한다. 도올은 강연이 있는 날 칼 날 위에서 춤추는 무당처럼 신열이 오르면서 몸이 가운해진다는 것이다.

집중과 몰입이 일어나면 이런 과정들은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그리고 특별한 것도 아니다. 독자들도 예전의 카트라이더나 스타크라프트의 게임을 하면서 다 느껴본 감정이다. 다만 실제의 일을 게임같이 즐기지 못할 뿐이다. 사람들의 시간(누구나 원하는 사람들의 관심과 시간)을 엄청나게 잡아먹었을 이 게임들 역시 보상은 실제적인 것이 아니었다. 게임에 이겼다는 승리의 희열이 귀한 몸들을 며칠 밤을 새게 만들기도 한다(100원 쇼핑카트와는 다른 보상의 메커니즘이다.). 간단한 게임의 법칙 속에서 사람들은 그렇게 진지할 수 없다. 마니아 세계에서 사람들이 빠져드는 이상한 컬렉션이나 구매활동에도 특별히 실용적인 보상이 없다. 우선은 자기만족이다. 그것을 알아주는 것은 몇 명의 다른 마니아들이다. 물론 돈이나 지위 같이 사회에서 인정해주는 보상도 있지만 마니아적인 보상도 여러 가지 기전을 통해서 강화되면 실제가 된다.

웹에서의 조회수, 사람들의 반응, 리플이나 악플과 같은 것은 다 집중도를 높인다. 이들은 실체가 없지만 실제로 실제보다 더 강한 힘을 발휘할 때도 많다. 수 만 개의 리플이 달리면 실제 세계에서도 무슨 일인가 일어나게 되어있다. 기호는 실제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는 말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컴퓨터의 세상이 되면서 가상의 세계와 실제의 세계는 더 애매해진다. 보상이 반드시 실체적인 것으로 주어지지 않는 다는 것도 명백해 진다.

언제인가부터 사람들이 매트릭스처럼 기호의 세계에서도 살게 되었기 때문에 세상은 모든 것이 기호이기도 하다. 컴퓨터의 프로그래밍이나 사업계획을 세우는 것이나 무엇인가를 공부하는 것의 공통점이라면 이들이 실체보다는 기호를 조작하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산업이 일어나며 실제로 무엇이 만들어지거나 유통되는 과정은 그전보다 확실히 줄어들었다. 전자업체나 시스템 업체들은 생산설비 자체보다 설계와 개념이 더 중요하며 소프트웨어 세계에서는 아주 일찍부터 그랬다.

개를 흔드는 방법 중에 꼬리를 흔들면 개가 흔들리는 것처럼 기호의 세계나 상징의 세계를 흔들면 실제의 세상도 같이 따라 흔들린다.

생산성을 높이거나 낮추는 방법- 집중과 관심 그리고 학습
단순 제조업 중심의 세상에서 집중이나 몰입 아니면 지적인 생산성 보다 중요하게 보였던 것은 사람들의 근로시간이었다. 기계와 생산 시스템이 워낙 단순했기 때문에 출력은 투입량에 비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만약 작업이 제안서를 만들어야 하거나 기안문을 쓰거나 새로운 설계를 해야 하거나 소설을 쓰거나 영화 각본을 써야 하는 경우라면 시간의 총량과 생산량의 비례관계는 맞지 않는다. 만약 작업이 어떤 분야의 혁신을 위해 생각을 하거나 학습을 하는 경우라면 더 맞지 않는다. 창의적인 작업을 하는 경우라면 판단할 기준조차 마땅치 않다. 기호의 세계는 물건이 아니라 글자나 기호와 같은 이상한 것들을 만드는 생산성을 다룬다. 무게와 부피 그리고 투입된 물자가 아니라 생각의 흐름이 더 중요하고 만들어 내며 정작으로 원하는 것도 사실상 사람들 생각에 어떤 변화를 주었느냐가 문제가 된다. 기호의 경제에서는 사람들이 원하는 답을 내주거나 원하는 답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거나 사람들이 원하는 답을 궁리하여 찾아주는 것이 사업이 된다. 생산성은 생각하는 방법이나 학습방법에 따라 변한다(수십 시간을 고민하고도 이해 못하던 것을 갑자기 몇 분 만에 이해하게 될 수도 있다. 만들지 못하던 기안문의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도 있다.).

지난 컬럼에 몰입이나 집중을 하는 일이 스스로 피드백 루프 그러니까 목표와 피드백을 만드는 과정이라는 것을 말했다. 앞머리에 적은 100원짜리 피드백 루프는 간단한 보상의 피드백 루프라도 매우 유용하다는 것을 길게 적은 것이다. 보상의 기전이 잘 먹혀든다면 피드백은 강하고 단순하게 일어난다. 생각하는 일에서 생산의 질은 머릿속의 새로운 설비투자를 일으키는 것으로 일단은 관심도를 높이면 집중이 일어나며 성과는 올라가게 되어있다.

생각하는 방법을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학습의 경지나 새로운 개념의 학습은 장고한 고민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일들을 개선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면서 만들어지곤 한다. 만약 교과과정에 문제가 있다면 이런 일들을 너무나 추상적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문제를 작은 것으로 쪼개지 못하는 경우에 더욱 심각해진다. 거기에 원래의 순수한 의도뿐만이 아니라 다른 교육 목표까지 덧붙인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곤 한다. 그래서 단순해져야 할 피드백의 루프는 정말로 길어진다.
학생이나 선생이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거창하거나 너무 먼 목표를 지향한다면 목표는 달성되기가 힘들다. 계속해서 무엇인가 동기부여를 해주어야 하는데 사람들의 동기는 대부분 그렇게 강력하지 않다. 오히려 주변의 다른 100원짜리 목표물에 신경을 빼앗기기 쉽다. 동기부여가 아주 강한 경우에도 그렇다.

그래서 지난번에 말한 것처럼 필자의 작은 아버지는 10킬로의 체중 감량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의를 준 것이다(거의 독학으로 엔지니어링을 배우고 사업을 확장한 경력이 있다.). 작은 아버지의 주장은 1-2 킬로 정도 감량의 사소한 목표를 최선을 다해서 유지하면 관심도 유지되고 생각도 집중되며 일도 더 잘된다는 것이다.


막연한 목표는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필자와는 곧잘 의견대립이 생기곤 하는데 10킬로 정도는 희망사항이지 목표치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정작 작은아버지는 그보다도 더 감량에 성공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요즘 학생들의 학습은 피드백의 루프에서 많이 벗어난 것이다. 목표나 동기 역시도 본인이 설정한 것도 아니다. 학원이나 학교에서 만든 학습 피드백을 추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많은 세월을 보내면 시키는 대로 학습하는 것을 배우겠지만 자신이 간단한 목표를 세우고 스스로 보상하는 학습의 루프나 몰입은 거의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 거기서만 끝나면 좋은데 회사에 들어오거나 프로젝트의 책임자가 되어서도 그러면 곤란한 정도가 아니다.

탁월한 선생은 어떻게 보면 적당한 목표를 제공하고 학생의 장단점을 파악한 다음에 개선의 여지가 있는 곳에서 학생의 개선이 일어나도록 다그치기도 하고 칭찬으로 보상하기도 하는 사람이다. 탁월한 학생은 그 목표를 자기 것으로 소화해서 몇 개의 것으로 나누거나 새로 설정한 다음 난이도와 기량을 조절하여 빠르게 배운다. 그 보상은 성공과 자신감이다. 제대로 진행되면 피드백 루프에서 잘 벗어나지 않는다. 자기 자신에 대한 지식도 증가하곤 한다. 이런 일을 반복해서 자율적으로 몇 번만 성공하면 큰 변화가 일어난다. “한 번에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있다” 라거나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 라는 말처럼 스스로 작은 목표의 피드백을 만들고 그 일에 집중을 시키는 길을 개발하지 않으면 일들을 끝마칠 수가 없다(그리고 보상이 없거나 무의미한 피드백 역시 의미가 없다. 적절한 보상은 100원 짜리라도 아주 강력한 것이다. 그리고 아주 강력한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은 자기목적성을 갖기도 한다.). 결국 과거의 정신훈련법들과 다른 것이 별로 없다. 표현만 다를 뿐이다.

시간 통계학
시간의 총량보다는 집중이나 결과물의 수준이 더 문제가 되는 경우라면 시간의 경제학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시간의 이용에 관한 통계라면 평생을 시간 통계를 내며 살았던 러시아 학자 루비세프의 실제 통계가 있다. “시간을 지배한 사나이”라는 그라닌의 소설에 나오는 실존인물이다. 루비세프는 자신의 업무에 들어간 평균시간의 최대 피크치를 7시간에서 5시간 정도로 잡았다. 시간 관리의 대가의 평생의 성과가 이 정도다. 필자의 경우는 2시간도 안 된다. 그래서 투입할 수 있는 시간의 여력은 대부분 사람이 생각하는 것 보다 적다. 아무리 비장하게 생각해도 그렇다. 이 시간 동안에 답을 못 내면 정말 답은 나오지 않는 것이다.

몰입이나 집중보다 조금 유연한 해결책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는 일이다. 관심을 증가시키는 것만으로도 구체적인 행동결론이 일어날 가능성은 훨씬 높아진다. 관심을 갖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대부분의 문제들은 해결책이 나오거나 해결의 실마리를 볼 수 있다.

지난번에 이야기한 드러커의 대가학생이나 그 보다 전에 이야기한 구글의 피터 노빅의 10년 동안 프로그래밍 배우기나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현장에서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받아 내거나 스스로 피드백을 만들어 나가는 방법이 가장 좋은 학습법이며 좋은 업무 해결법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업무와 학습을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 필자의 경우 이들을 어느 정도 묶어서 파악하고 생각하게 된 것은 최근으로 이해가 늦은 것은 필자가 어리석었기 때문이다. 이쪽 분야의 스승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필자 역시 이런 생각을 할 때까지 스스로 배우는 (teach yourself)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뭐 대단한 것이 아니고 책에 나오는 일반적인 원칙들을 독자적으로 이해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집중이나 몰입과 같은 것이 경영이나 경제의 앞면으로 부상할 것인가에 대해서 필자는 그 정도의 중요성을 이미 획득했다고 말하고 싶다. 교육이나 정치를 떠나 생산 수단으로서도 중요해 진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생산의 최종 산물이 파일이나 문자나 그림과 같은 상징과 기호의 세계이고 생산 수단은 학습을 통해서 일어난다.

응용에 따라서는 다른 사람들을 훈련시키고 프로그램 하는 법이 더 중요해지는 것이 지식사회의 단면일지도 모른다. 100원짜리 피드백으로 보상하여 사람들을 통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종류의 책들이 앞으로 더 이상한 모습으로 많이 팔리며 독자들에게 어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가르치는 피드백의 고리이다. 가장 많은 시간은 그 속에서 흐르기 때문이다. 100원짜리의 쇼핑카트를 예로 든 것처럼 일상적이고 항상 조정돼야 하는 작은 목표들이기도 하다. @
 
 
 
출처 : ZDnet